킹콩, King Kong, 2005
감독 : 피터 잭슨(Peter Jackson)
배우 : 나오미 와츠(Naomi Watts, 앤 대로우 역), 잭 블랙(Jack Black, 칼 던햄 역), 애드리언 브로디(Andrien Brody, 잭 드리스콜 역)
공식사이트 :
http://www.kingkong.net/home.html

이미지 출처 : http://www.kingkong.net/home.html
기억이 흐릿하지만 학교 영미문학 수업 교재에 참고하면 좋은 영화 목록에 적혀있던 영화이다. 교재의 내용은 과거의 역사를 토대로 하여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는 미국의 문화를 소개하고 분석하면서 미국인들의 사고와 행동 방식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들이었다. 이 중 영화 킹콩이 어디에 적혀 있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미국인들의 물질만능주의와 관련된 부분이었을 것이다.
잠 깐 그 내용을 소개하면, 미국인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얻기 위한 활동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고, 오히려 물질적 이득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적 낙오자나 다름 없이 여겨진다는 내용이다. 이는 과거 미국인들이 영국의 식민지배를 벗어나 독립을 선언하며 누구에게나 자유와 평등의 권리가 있음을 천명한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경쟁을 통해 물질적 이득을 취하는 것은 그들의 뿌리 깊은 사상의 발현인 것이다.
공부와 이해라는 측면에서 미국인들의 습성을 보면, 그들의 행위의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에서 확대되어 전세계에 만연한 물질만능주의는 재물 축적을 위해 동물을 학대 하거나 환경을 오염시키는 일을 초래하였다. 공장에서 나오는 유독물질을 바다로 흘려 보내 주위 바다 생물이 때죽음에 이르게 하고, 건물을 짓기 위해 산을 허물거나 강을 매립하는 일은 주변 생태계를 송두리째 파괴한다. 자연에서 뛰어 놀던 동물들은 터전을 잃고 헤매다 죽거나 사람들에게 잡혀 놀잇감으로 이용되다 최후를 맞이한다. 그동안 문명의 급속한 확대와 발전을 이루는 데 공헌을 한 경쟁심과 소유욕의 총체라 할 수 있는 물질만능주의는 이러한 상황에서 더이상 그 명분을 유지할 수 없게된 것이다.
이제 오늘날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멈추라고 주장한다. 정치인은 정책을 통해, 교수는 연구를 통한 논문으로, 가수는 노래를 통해, 영화감독은 영화를 만들어 물질만능주의로 빚어진 잘못들을 올바로 알리고 그것을 고쳐야한다고 주장한다. 피터 잭슨 감독도 킹콩에 그런 뜻을 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영미문화 교재에 참고영화로 기재된 이유도 이 영화가 미국인들의 습성을 잘 드러내 주기 때문일 것이다.

판자집 넘어로 빌딩숲이 보인다
영화 초반에는 허름한 차림새의 사람들이 서 있는 판자촌과 수많은 색색의 차량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빌딩숲 거리를 대조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후엔 활발한 경제 활동이 이루어 지는 번화가가 조명되면서 대책없이 자신의 영화에 집착하는 영화감독(칼 던햄)과 투자금의 회수에 혈안이 된 투자자들의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영화 초반에 제시되는 배경과 사회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미국인들의 물질추구의 속성을 관객에게 노출시킨다.

뒷 꽁무니에 배 이름VENTURE이 적혀있다
주인공들이 바다를 행해 타고 가는 배의 이름도 벤처(Venture)이다. 우리나라에선 벤처기업이라 하여 많은 자본이 없어도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모험적인 사업을 한다는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그 사전적 의미는 '모험' 이외에도 '투기, 투기적 기업, 운' 등과 같은 모험적인 행위로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당시 미국인들의 속성이 스며있다. 즉, 보물섬을 찾아 떠나는 해적의 행동 양식과 하나도 다르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다.

원주민에게 붙잡힌 칼 던햄
벤처호는 알 수 없는 암울한 기운을 품은 섬을 발견하고 암초와 짙은 안개에 휩싸여 꼼짝 못하게 된다. 벤처호의 일행 중 몇몇은 섬을 수색하다가 원주민과 원시동물의 공격을 받고 목숨을 잃게 된다. 그 와중에도 영화감독은 이곳에서 영화를 완성시키면 큰돈과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은 사람의 신념을 조작(죽은 이가 원시섬에서 영화를 완성시키려는 신념이 있었다고 주장하나 이것은 영화감독의 신념일 뿐이다.)하고 입장료 수익금을 그 가족들에게 기부할 것이라는 믿지 못할 말로 영화 찍기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공룡무리로부터 간신히 살아남은 수색대와 영화감독 일행은 또한번 원시 곤충의 습격을 받고 거의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 순간 때마침 도착한 후발 구조대의 도움으로 그들은 살아나지만, 킹콩에게 붙잡혀 간 주인공 ‘앤’은 찾아내지 못한다. 수색대와 구조대는 이 섬을 떠나기로 결정하지만 앤을 사랑하는 작가 ‘드리스콜’은 홀로 킹콩을 향해 아니 앤을 구하러 나선다. 이 때, 죽을 고비에서 겨우 살아나 만신창이가 되었음에도 영화감독은 벤처호의 선장에게 킹콩을 생포해 돈을 벌자는 은밀한 계획을 제시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화감독의 실체를 깨달고 적대적이었던 벤처호의 선장은 실현 가능해 보이는 감독의 ‘사업 계획’을 듣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된다. 적대적인 사람들조차 재물에 대해서는 서로 비슷한 공감대를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시대배경의 단적인 영화적 재연이라고 볼 수 있다.

구경거리로 전락한 킹콩
결국 킹콩을 사로잡은 그들은 뉴욕의 대형 공연장에 킹콩을 크롬합금으로 묶어 놓고 엄청난 사람들을 불러들이게 된다. 이 장면은 자연의 생물을 재 것인 마냥 마구 가져다가 이용해 먹는 돈에 환장한 생명체들의 전형을 보여준다. 누가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했는가? 자신을 지배자로서 여기는 생명체들은 다른 생명을 결박하고 구속하여 한낮의 웃음거리와 구경거리로 전락시킨다. 그들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서 이러한 인간의 명예욕과 재물욕이 불러온 파렴치한 모습은 태풍이 오기 전 잠시의 고요한 바다일 뿐임을 곧이어 킹콩의 탈출로 명백히 드러내준다.
영화의 절정에 이르러, 공연장에서 탈출한 킹콩은 자신이 사랑하는 ‘앤’을 찾기 위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앤과 다시 만난 킹콩은 순한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 듯 빙판 위에서 미끄럼을 타며 앤과의 즐거운 순간을 보내지만, 인간에게는 입장료 수익을 올려주는 게 아니면 오로지 위험한 생명체일 뿐인 킹콩은 군대의 위협을 받으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으로 도망친다. 자신은 사랑을 할 수 있는 존귀한 존재라고 소리칠 수 없었던 킹콩이 할 수 있는 건 인간의 힘으로 쌓아놓은 가장 높은 건물을 올라 직접 증명하는 일뿐이었기 때문일까? 그러나 건물의 높이를 뛰어 넘을 수 있는 비행기를 탄 인간은 킹콩에게 총알을 쏟아 부어 까마득히 깊은 건물 아래로 다시금 떨어뜨린다.

킹콩의 가슴팍에 올라 사진을 찍는 기자들
죽어서 미동도 없는 킹콩 주위로 기자들은 자신도 한컷만 찍자며 소란을 피운다.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킹콩의 가슴팍을 밟고 올라 대놓고 얼굴에 플래시를 터뜨리며 만족감에 찬 미소를 짓기도 한다. 또다른 기자는 나름대로 빌딩에 올라간 이유를 분석하기도 하지만, 동료기자는 분석의 가치도 필요 없다는 듯 멍청한 짐승일 뿐이라고 단정 짓는다. 킹콩의 죽음으로 돈줄을 놓친 영화감독은 갖은 인상을 찌푸리며 카메라를 향해 마지막 말을 던진다. 짐승을 죽인 건 비행기가 아니라 미녀라고. 비로소 그는 킹콩을 사람과 같은 생명체로 이해하고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인가? 아니면 위험한 생명체는 다루기 힘드니 미녀들을 이용한 사업(즉 사람을 지배하여 활용하는 사업)으로 방향 전환을 꾀하며 타락의 극으로 치닫고 있는 것인가?

사람보다 카메라를 먼저 챙기는 칼 던햄
여느 영화와 마찬가지로 킹콩은 여러 가지 시선으로 감상이 가능하다. 주로 감상자는 킹콩과 앤을 중심으로 해서 짐승과 인간의 불가능한 사랑을 다룬 ‘야수와 미녀’의 실사영화판으로, 아직도 남아 있을지 모를 미지의 세계에 존재하는 킹콩과 원시동물 간의 현실감 넘치는 액션 블록버스터로, 모든 사건들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에서 컴퓨터그래픽과 특수효과로 재창조 된 판타지 드라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영화감독 ‘칼 던햄’을 중심으로 하여 물질만능주의에 미쳐버린 인간상을 고발하는 사회비판주의적 시각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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